내가 차려준 남편 생일상 - 당근케이크 만들기

무려 2주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했던 이번 남편의 생일. 계획대로 무사히 성공했을까? 작년의 경험을 토대로 내 수준에 맞는 계획을 짠다고 짠 건데, 이번 년도에도 버거웠다. 원인은 바로 이 녀석 당근 케이크!

필요한 재료 잘 준비해서 잘 섞어서 빵 만들고 크림 만들면 되겠지. 그래 그게 바로 문제였다. 생일 전날 당근 케이크를 만들고, 당일 아침에 조리할 재료들을 준비하고 나니 시간은 무려 밤 12시를 향하고 있었다. 케이크를 만드는 난이도가 높진 않았다. 그치만 시간과 힘이 많이 필요했다. 각각의 재료들을 계량하고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첫 케이크 베이킹이었기에 계량에 더더욱 철처했던 것도 한 몫했다. 일일히 저울에 달아 준비했으니 원.

참고한 레시피에서는 당근을 얇게 채 썰라고 했지만 어느 세월에 다 채썰까 싶어 다 다져버렸다. 호두는 달군 프라이팬에 볶아 납작한 계량 스푼으로 으깼다. 호두를 으깨본 건 처음인데 기름져서 놀랐다. 불에 볶아서 그런가? 암튼 너 기름진 녀석이구나!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아 레시피 순서대로 했더니 정말 빡셌다. 예를 들어 시트 반죽에 식용유를 섞을 때는 3회에 걸쳐 나누어 섞으라는 부분. 한방에 때려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꾸욱 참았다. 

한참을 시트 반죽과 씨름한 뒤에야 밥솥에 반죽을 올릴 수 있었고, 취사 시간이 40분이니 한 10분이면 크림 만들겠지? 크림 냉장 보관할 시간은 충분하겠어! 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크림을 섞는 와중에 들려오는 소리 "잠시후 취사가 종료됩니다."

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취사가 끝난 밥통을 열어 시트를 찔러보니 안쪽이 덜 익어 20분 취사를 더했다. 20분이란 시간을 벌어 크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크림 역시 한번에 섞지말고 여러번에 걸쳐 섞으라는 레시피 말대로 했더니 힘들었다. 꽤나 그럴 듯한 크림이 완성됐다.

하지만 위 사진에도 잘 보이겠지만.. 시트를 충분히 식히지 않고 크림을 펴발랐다가 녹고 난리가 났다. 녹아버린 케이크여... 
급하게 냉장실로 넣어 크림에 빠진 당근케이크 꼴은 면했다. 

그렇다면 맛은?! 고생한 보람이 있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당근케이크는 몇 일에 걸쳐 우리의 커피 타임을 즐겁게 해준 뒤 사라졌다.

생일 아침 상이다. 이렇게 찍고 보니 왜이리 없어보이지..ㅋㅋㅋ 아침이다보니 너무 부담스럽게 먹지 않으려고 가볍게 준비했다. 계획대로 낙지볶음과 가지전을 했다. 가지 칼집 내는 게 번거로웠는데, 칼집 낸 덕에 전은 쉽게 부쳤다. 호박전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오후반차를 내고 점심 때 맛있는 걸 해먹었어야 했지만, 계획을 변경해 다음날인 금요일 연차를 써버리고 저녁에 우리의 사랑 '이케맨'을 갔다. 갈 때마다 꼭 시키는 전복내장파스타를 먹으며 즐거운 생일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