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가 장마 타고 놀러 온 날?

이틀 전 좋은 날 김밥 리뷰를 만족스럽게 쓴 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어떤 이질감이 시선을 잡아끌어 뒤돌아 보니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니가 왜 여기 있어..?

저 위치는 내 책상 왼편인데, 수납이 부족해 캠핑용 폴딩박스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저 개 발바닥이 찍힌 종이.. 저게 원래 저 위치에 있던 게 아니다.

푸른 종이 한 장에 웬 개 발바닥이냐 싶겠지만, 사실 저 발바닥은 우리 뭉치 발바닥을 찍어 둔 것이다. 뭉치가 떠나기 전 뭔가 뭉치를 추억할 만한 걸 남기고 싶었는데, 그때 한창 도움을 받던 아반강고 카페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기 전에 발바닥을 도장으로 찍어 남기거나 털을 조금 잘라 보관해 두는 등의 의미를 남기는 걸 보고 따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 뭉치 발바닥이 찍힌 종이와 약간의 뭉치 털이 담긴 지퍼백을 책장 한 곳에 두고 가끔 꺼내 보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게 저기로 날아온거지?

원래의 위치

원래는 책장의 중간 칸, 사진으로 보이는 칸에 흰 얇은 박스 위에 얹어두었다. 책장 칸을 가보니 뭉치 털을 담아둔 지퍼백도 책장 앞 쪽으로 떨어져 있었다. 이 날 책장 가까이에 선풍기를 두고 있었는데 회전을 하지도 않고 내쪽으로 바람이 오게끔 했는데 어떻게 바람이 저 책장 칸 안까지 타고 들어간 건지 알 수 없었다.

신기한 일이라 뭉치가 놀러 왔나?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됐다. 한 달 있으면 뭉치가 떠난 날이 다가오는데 그때도 요즘처럼 비가 참 많이 왔었다. 그래서 뭉치가 장마 타고 우리를 보러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상상을 이어가다 보니 정말 뭉치가 왔다면 사실 저 위치가 아니라 내 책상 위였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뭉치가 있을 때 사람한테 붙어있고 싶어 해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면 항상 자기도 올려달라고 올려달라고 했었다. 그래서 무릎 위에 올려놓곤 했는데, 몇 시간을 그러고 있자니 다리에 쥐가 나 머리를 쓴다고 한 게 뭉치 방석을 가져와 책상에 두고 그 위에 뭉치를 올려두는 거였다. 

꼭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올려 "나 좀 올려줄래..?"하고 애절하게 쳐다보곤 했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렸으면 푹신한 거 어지간히 좋아하는 털 뭉치 친구들이 가만히 있어줄 리 없는데, 푹신한 거 위에 누우시죠 하니 몇 시간이고 그 위에서 잠도 잤다가 나도 봤다가 가끔 간식도 얻어먹고 했다.

책상 위에서 꿀잠 자던 뭉치, 나를 빤히 쳐다보던 뭉치

 

그런데 문제는

더러워서 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내 책상이 더럽다는 거였다. 이러니까 뭉치가 올라올 자리가 없었잖아! 저기가 깨끗했으면 뭉치의 발바닥이 저 자리에 내려앉았을 텐데! 그래도 어디서나 사람하고 가까운 모서리에 똬리 틀고 있길 좋아하던 뭉치는 여전했는지 발바닥 종이가 안착한 곳도 역시 모서리였다. 😄

이 재밌는 일을 어서 남편한테 공유를 해주니 뭉치가 온 게 맞네 하며 자기 자리에 박스가 있어서 뭐지? 하고 위에를 봤나 보다고 얘기를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이지? 했는데 잠시 후 남편이 보내온 그림 자료를 보고 바로 빵 터지고 말았다.

남편에게 동의를 얻고 올리는 그림 자료

사실 저 폴딩 박스가 있던 자리는 뭉치의 공간이었어서 그곳에는 켄넬 그리고 물통과 밥그릇을 놓던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뭉치가 놀러 와서 내 자리를 찾았는데 내 집은 없고 요상한 박스가 있으니 거기에 발을 올려 미어캣마냥 내 집은 어디 갔지?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거였다. 🤣 적절하게 딱 발바닥 위치가 그런 느낌이라 너무 웃겼다. 

요즘 뭉치가 있는 집 앞산에 뜸하긴 했지. 그래서 뭉치가 와봤나? 얘네들 왜 안 오지 잘 살고 있나 하고ㅎㅎ 뭉치 생각이 진해져서 침실 협탁에 둔 뭉치 액자 앞으로 가서 뭉치를 쓰다듬어주던 그때처럼 미간도 긁어주고 귀털도 결대로 쓰다듬어 주었다. 

희한하다. 너에 대한 생각은 갈수록 흐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해지는 것 같아. 그런데 또 세세한 일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우리 집에 데려와 적응시킬 때의 일들을 적어두길 얼마나 잘했는지. 가끔 써둔 걸 읽어보면 깜짝 놀란다. 뭉치가, 우리가 이랬다고? 하면서 말이다.

오랜만에 뭉치를 더 진하게 떠오르게 한 즐거운 에피소드. 나중에 읽으면 또 즐거워지겠지.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인 잠이 덜 깬 뭉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