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과 별이 아름다웠던 화천 조경철천문대 (feat. 번개 구경)

토요일인 어제 포천 백운 계곡에 갔다가 근처에 멀지 않은 곳에 야경 맛집이라는 조경철천문대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일몰 시간쯤 도착할 수 있게 시간을 맞춰서 갔다. 광덕산 정상(해발 1,010m) 에 위치한 지라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고 꼬불꼬불해 운전이 힘들었다. 중간중간 차 2대가 지나가기에 빠듯한 구역도 있어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올라가는 동안 간간히 내려오는 차만 있고 우리 뒤로 올라오는 차가 없어서 약간 불안했다. 올라갔더니 우리밖에 없는거 아니야?

그건 완벽한 기우였다. 정상에 오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몰을 감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사람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인기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못하고 와서 깜짝 놀랐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모여있지? 싶었다. 우리가 도착한 때가 마침 일몰이 시작되던 참이라 사람들이 모두 울타리 주변에 모여 있었던 것이었다. 일몰을 놓치고 싶지 않아 빨리 주차를 하고 싶었지만 좁은 주차장은 이미 만석이었다. 직원의 통제 아래 적당한 곳에 차를 대고 내려 일몰을 감상했다. 

바다에서 일몰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높은 산에서 일몰을 본 적은 처음이다. 정말 장관이었다. 절로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고 애국가 비디오가 떠오를 정도로. 해가 이렇게 빨리 떨어지는 지 처음 알았다. 일몰이 시작되고난 후부터 봤기에 이미 해가 약간 들어가 있었는데, 좀 더 잘 찍어보겠다고 자리를 옮기는 찰나에 해가 산 뒤로 쏙 들어가버렸다. 사람들이 저마다 해가 저렇게 빨리 내려가네 쏙 숨어버리네 하고 놀라워했다.

해는 금방 떨어졌지만, 붉게 물든 하늘은 오래 감상할 수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과 구름의 형태에 감탄했다. 산은 수묵화 그 자체여서 일몰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천문대라 별을 볼 생각으로 왔다가 생각도 않던 아름다운 일몰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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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좀 더 내리자 산 아래 불빛들이 하나씩 켜지며 또 다른 아름다움이 보였다. 주차를 통제하시던 직원분께서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시며 야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더해주셨다. 저기 보이는 밝은 별이 금성이라고 알려주시고, 멀리 보이는 산을 일자로 쭉 밝히고 있는 것이 철책선이라고 알려주셨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보니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화장실에 가려고 천문대 건물로 갔다. 입구에서 출입 관리를 하시던 직원 분께서 오늘은 은하수를 보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천문대에서 유료 서비스인 관람 해설 코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걸 문의한 방문객에게 설명하시는 걸 옆에서 들은 것이다. 아쉽지만 일몰을 본 걸로 만족해야겠다하고 하늘을 계속 바라보는데 옆 쪽에서 뭐가 번쩍했다.

번개가 내리치는 모습

그건 바로 번개였다. 시야 오른쪽에 높은 구름이 가득 있었는데 거기서 번개가 번쩍번쩍했다. 높은 곳에서 번개를 내려다보니 신기했다. 제우스의 번개가 생각나는 번개. 한참 동안 번개가 쳐서 사람들은 번개가 칠 때마다 우와 우와했다. 은하수 대신 번개 구경도 좋네.

점점 어두워지길래 차를 돌려나가는 일도, 내려가는 길도 걱정됐다. 은하수는 못 본다고 했으니 빠르게 퇴각하기로 하고 했다. 천문대라 광해가 적어 진짜 어둡다. 주차장 주변 길도 좁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하늘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창문을 모두 내린 채 아주 천천히 나갔다. 천문대를 벗어나 창문을 연 채로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가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입이 쩍 벌어졌다. 별이 엄청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냥 내려가기 아쉬울 정도라 길 중간중간에 있는 넓은 공간에 차를 대고 별을 감상했다. 마음 같아서는 돗자리를 펴고 누워 감상하고 싶었지만, 열심히 허리를 꺾어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카메라를 따로 가져가지 않아 휴대폰으로 별을 찍어보려 용을 썼지만 찍히지 않았다. 앞으로는 카메라를 꼭 챙겨야지! 전에 산너미 목장에서 별을 봤을 때보다 훨씬 많은 별을 보았다. 다음에는 미리 날씨를 확인해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날 오기로 약속했다. 

 
천문대 이름이 누군가의 이름을 딴 듯해 집에 와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아폴로박사 조경철 박사님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굉장히 관리가 잘 되는 느낌이었는데 화천군에서 주도해 건립한 시민천문대라니 놀랍다. 홈페이지에서는 날씨와 도로 상황을 확인할 수 있고 관람에 대한 안내도 확인할 수 있다. 

화천 조경철 천문대

주말이라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야간에 사람이 가장 몰리는 시간대라 그런지 몰라도 직원 분이 많았고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스크를 꼭 쓰고 있으라고 직원분들이 자주 외치셨는데, 어떤 분이 마스크를 여러 번 벗었는지 건물 옥상에서 전체적으로 지켜보시던 직원분께서 퇴장하시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러번 경고를 했음에도 마스크를 벗으셨는지 퇴장하라고 했지만, 그 분은 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퇴장 안하면, 어쩔건데요?"하고 직원 분을 도발했다. 퇴장 조치를 받은 사람의 일행은 직원분에게 내려와보시라고까지 해 이러다 싸움 나는 거 아닌가하고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 직원분이 내려오면서 경찰 부르세요 하고 무전하는 모습을 보아 더욱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이 됐는지 더 이상의 큰소리는 나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시설을 개방할 수 있는 것은 직원분들의 큰 노력 덕분인데, 마스크를 벗지 말아달라는 그 작은 요구도 지키지 않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잘못을 했으면 빠르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좋았을텐데 오히려 도발이라니. 

그저 야경 맛집이래서 가까운 김에 들러본 곳이었는데, 생각 이상으로 좋은 곳이었다. 방문하시는 분들은 날씨와 도로 상황을 미리 확인하시고 안전하게 다녀오시길 바란다.